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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_ 11월의 독립운동가 "조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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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11-14 13:50 조회2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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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 [1876~1909]

훈격 : 독립장 / 서훈년도 : 1963년

 

ㅇ1907년 함평에서 김태원과 함께 거의하여 함평성의 일군을 급습
ㅇ1908년 김태원 전사 후 의병장으로 추대, 호남창의대장으로 활약, 대치 등에서

   전해산 의진과 합진하여 일군과 교전
ㅇ1909 어등산에서 일경의 적탄에 맞아 순국

 

조경환(曺京煥, 1876. 2. 14. ~ 1909. 1. 10., 전남 광산)선생은 유년시절부터 꾸준히 유학에 정진하다가 전국을 돌며 조선 정국을 살폈다고 전해지며, 귀향 후에는 서당을 개설하여 구국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후학을 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며 일본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자 국권수호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결심하였다.
당시 호남지역 의병전쟁을 이끌던 김준 의병장은 조경환을 찾아와 시국 현안을 논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조경환이 의병 참여를 결정하였다. 1907년 12월 김준 의진에 합류하여 좌익장을 맡고, 호남지역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를 주도하였다. 또한 여러 의병이 연합한 전투에서도 선봉장을 맡아 큰 활약을 펼쳤다.
1908년 4월 일본군과 교전 중에 김준 의병장이 전사하자, 흩어진 의병을 수습하여 재정비에 나섰다. 이에 전라북도에서 활동하던 전수용 의병장도 힘을 보태며, 2백여 명의 의병이 조경환을 중심으로 결사투쟁을 준비하였다. 조경환 의진은 도통장 박용식, 선봉장 김원국 등으로 구성되어 전라남도 각지에서 일본 군경에 맹렬히 맞서 싸웠다.
한편 일본군은 어등산 일대를 수색하며 포위망을 좁혀갔고, 1909년 1월 두 시간 여 교전 끝에 조경환 의병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의병이 전사하고 말았다. 증언에 따르면 총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의병진 명단을 불사르며 의병들을 지키고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이에 정부는 조경환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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