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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 신석구

 

은재 신석구(殷哉 申錫九 1875~1950)


수상: 건국훈장 대통령장


선생은 1875년 5월 3일 충북 청주군(현청원군) 미원면 금관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독립 운동때 민족대표33인의 1인으로 참여하여 전 민족이 항일독립을 위해 궐기하는데 지도적 역할을 하는 한편 영남에서 독립운동이 가장 치열하였던 창녕지방 영산의 24인 결사대에, 서울의 독립운동계획을 계속 연락하여 줌으로써 창녕의 전 국민이 일제히 봉기하여 무장투쟁을 하는데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서울복심법원(대법원)에서 2년 6개월의 징역선고를 받고 옥고를 겪은후 1921년 11월 4일에 만기 출옥하셨다. 출옥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충남 천안에서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선봉섰다가 피검, 악형 끝에 중병으로 석방되었으며, 평남 용강에서도 신사참배 반대, 일본국기 게양을 거부하여 용강경찰서에서 3개월 동안 혹심한 고초를 겪던중 감격의 8.15광복을 맞이하여 석방되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북한당국에 협력을 거부하고 항거하던중 1946년 3.1절에는 “평양방송국사건”으로 1947년 감리교회 서부연회의 초대연회장(감독) 때에는 “기독교 민주당 사건” 1948년에는 “북한 단독선거 반대 서한”을 김일성에게 보내는등 반공운동을 계속하여 여러차례 중앙정치보위부에 피검되었으며 1949년 4월 19일에는 소위 “진남포 4.19사건”으로 피검되어 3개월여의 혹독한 고문 끝에 “반동비밀결사를 조직 지도”하였다는 날조된 죄명으로 평남재판소(재판장 허정숙)에서 사형, 북조선 최고재판소(재판장 김두봉)에서는 10년형의 선고를 받고 평양 형무소에서 옥고중 1950년 10월 10일 총살 당하셨다.

대한민국정부는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을 기리 빛내기 위하여 1963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며 1968년 7월 9일에는 국무회의의 의결로 선생의 영현(유품)을 서울 국립묘지(순국 애국지사 묘역)에 1968년 9월 18일 안장 하였다. 출생지인 충청북도 청주시 3.1공원에는 1980년 광복절에 도민의 성금으로 신석구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