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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최린 [崔麟, 1878~1958]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독립운동가.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귀국해 1911년, 보성학교 교장에 취임하고, 신민회에 가입하여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했다. 3.1독립 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33년 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세우며 친일파로 훼절하여 광복 때까지 친일활동으로 일관했다.

호 고우(古友), 도호(道號) 여암(如庵), 창씨명 가야마[佳山麟]이다. 함남 함흥(咸興)에서 태어났다. 도필두(都必斗)에게서 한학을 배웠으며 18세 때 각지를 유람하였다. 불교에 귀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한국인의 모임인 일심회(一心會)에 가입하여 정부의 개혁을 추진하다가 발각되어 일본으로 피신하였다. 그해 7월 귀국하여 외부주사(外部主事)를 지내고, 1904년 황실특파유학생으로 도쿄부립[東京府立] 제일중학에 입학, 일본유학생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1909년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귀국, 1911년 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天道敎)에 입교하였다. 이어 보성(普成)고등보통학교 교장에 취임하고,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하였다. 1918년 천도교 간부들과 독립운동방안을 논의, 3.1독립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천도교 교세확장에 힘쓰고, 1927년 구미 30여 개국을 유람하였다.

그러나 그후 1933년 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세우며 친일파로 췌절, 1934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가 되었고, 1937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新報)》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1939년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단장을 지내는 등 8·15광복 때까지 친일활동으로 일관했다.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