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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덕

 

권병덕 [權秉悳, 1867.4.25~1944.9.15]


수상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천도교 종리원의 서무과 주임, 중앙교회 심계원장·감사원장·선도사 등을 지냈다.  권병덕은 1868년 4월 25일 충북 청주군 미원면 성화동에서 태어났다. 1885년 4월 임규호(任奎鎬)의 권유로 동학에 입교하였다. 1886년 최시형(崔時亨)에게 가르침을 받고, 질병이 만연한 충청도와 경상도에 포교활동을 벌여 청주접주가 되었다.  
1894년 동학의 2차 봉기 때 도인(道人) 3만 여명을 이끌고 참여하였지만, 일본군과 관군, 민보군에게 패퇴하였다. 1906년 1월 손병희(孫秉熙)가 이끄는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의 정비와 교세의 신장을 위해 활동하였다.
1907년 시천교로 옮겨 활동하다가 교권 장악을 둘러싼 내부 분열이 일어나자, 1916년 다시 천도교로 돌아왔다. 이후 장석승례(丈席承禮), 도사(道師)에 임명되어 천도교를 기반으로 민족운동의 역량을 신장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18년 말 천도교는 국외에서 전개된 독립운동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3ㆍ1운동을 준비하였다. 기독교, 불교의 주요 인물들을 만나 독립선언서 제작과 민족대표 선정 등에 대해 협의하였고, 1919년 2월 20일경 협의를 마무리하였다.      
권병덕은 1919년 2월 21일 손병희로부터 독립선언 참여 제의를 받고 흔쾌히 찬성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서 제작과 배포, 파리강화회의의 각국 대표자에게 보내는 건의서에 서명하고, 3월 1일 민족대표들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독립선언식 직후 피체된 권병덕은 보안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언도받았다. 1921년 11월 4일 만기 출옥한 권병덕은 <동아일보>의 인터뷰를 통해 민족의 사랑과 단결을 촉구하였다.  출옥 직후 천도교 내부에서는 개량적 문화운동을 추진하던 구파와 혁신운동을 추진하는 신파의 분쟁이 야기되자, 구파와 신파의 분쟁을 조정하며 천도교 내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1922년 말 천도교 신파가 ‘천도교 연합회’를 설립하여 분립하자, 천도교에서 탈퇴하여 수운교와 상제교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27년 이후 신간회에서 활동하다가, 신간회가 해체되자 다시 천도교 구파로 돌아왔다. 
1930년대 중반 이후 권병덕은 『이조전란사(李朝戰亂史)』, 『조선총사(朝鮮總史)』, 『궁중비사(宮中?史)』를 발간하여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조선총사』는 일제침략에 항거한 의열투쟁의 역사를 담은 역사서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